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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M CHURCH

해외선교

캄보디아 배한숙선교사 선교보고
2013-08-24

열방의 주인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나가는 날이 이리도 빠릅니다. 벌써 8월도 중반을 넘었습니다.

 

정명철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온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 속에서 있으면서도 자주 소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한여름뿐인 나라에 있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언어와 현지적응에 주력하는 기간이라

특별히 보고를 드릴만한 사역이 없기도 합니다.

 

적어도 한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선교 현지에서 그곳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역을 시작하려면 말입니다.

그래서 총회 선교부에서도 3년 동안은 아예 수습기간으로 정하고 언어연수에 주력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총회의 선교 정책을 잘 따르는 선교사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 캄보디아에 오자마자 프놈펜 외곽인 끄랑돈떼이지역에 있는 캄보디아 교회를 맡았습니다.

첫 주일부터 통역을 대동하고 교회사역을 시작하였지만 한국어로 축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한 주 두 주 묻고 또 배워가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끄랑돈떼이교회가 어느 듯 캄보디아 성도 중에서

서기와 회계를 세워 임시 공동의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현지인 사역자의 목사 안수를 위한 청원을 결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월부터는 무작정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한글에서 영어, 영어에서 캄보디아어로 두 번씩이나 번역한 원고를 들고 하는 설교지만

2주에 한 번씩, 현지인 사역자와 번갈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79일에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이곳 캄보디아에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먼저 온 선교사들께서 10년간 피땀을 쏟아 부은 열매였습니다. 저희 끄랑돈떼이교회도 거기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의 캄보디아인 사역자인 사포(Sapho)’ 전도사가 독노회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는 6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주 전에는 독노회산하의 신학교인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의 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경력이 들통 나면서 캄보디아의 견습 선교사 생활이 너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주간은 이 나라 정세가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선거 후폭풍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제게는 이곳에 온 후로 가장 바쁘고도 기쁜 기간이었습니다.

캄보디아 도시형 주택의 하나인 플랫하우스를 빌려 학사(學舍, 시골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숙사)를 꾸미고 있는

한 선교사님의 공사 현장을 드나들었습니다. 아주 의미 있는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아니라

저희 교회 출신의 예비 대학생 두어 명을 그곳에 부탁할 심산으로 열심을 다해 공사를 거들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장차 이 캄보디아를 이끌어갈 리더들의 산실이 되게 해 주십사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85~7일은 우리나라의 수능고사와 같은 국가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학생 중에서도 4명이 시험을 쳤습니다.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이름은 빤야입니다).

시험 전날인데 도저히 대학을 갈 길이 보이질 않아서 시험을 포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교에서 1, 2등을 하는 수재였습니다. 급히 전갈을 넣었습니다.

어떻게든지 학비를 책임져 줄 테니 시험을 치라고 일렀습니다. (이곳의 국립대학은 월 100불 정도가 필요합니다.)

저도 아직 선교사 생활비 외에 사역활동비가 없는 견습 선교사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이 일을 맡기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시험을 끝내고 저와 마주 앉은 빤야는 새 희망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학과인 <왕립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이번에 실패하면 한 해 더 공부해서라도 꼭 거기에 입학하겠다며 그래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해 주겠다고 대답하면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책임져 주십시오! 저는 다만 하나님의 통로가 되겠습니다.’

이곳 캄보디아는 월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