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천만명에 불과한 체코 공화국에서 코비드 19로 사망한 숫자가 4만명이 훌쩍 넘었고, 이제 일일 사망자 숫자가 한자리 숫자로 내려가면서 병원과 약국 등 위험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벗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을 때, 우크라이나에서 2월 말에 전면전이 발생하면서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집을 떠나 방공호 등 안전장소로 피난한 사람들이 약 1100만명 그리고 해외로 피난한 난민은 7백만명이 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는 4천만명입니다. 피난민은 주로 여성 노약자 어린이들이며 성인 남자의 경우 결혼하여 자녀가 3명이상인 경우에는 가족부양과 돌봄 때문에 해외 피난이 허용되었습니다.
코비드 19 긴급조치로 록다운이 되면 정부가 모든 사업장의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불하고, 공무원들과 회사들은 자택근무로 돌아가 사회가 정지되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국가경제는 점점 파탄이 나고 사회 생태계는 붕괴되어갔습니다. 오미크론이 확산되던 작년 가을 부터는 확진자가 쏟아져 나와도 사망자 숫자가 높아지지 않자 경제회복을 위해 오히려 긴급조치를 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였습니다. 확진자는 하루에 수만명이 쏟아져 나오고, 방역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야 했고, 만약 확진이 되면 직장에 통보해서 자가격리를 들어가는 방역 무방비 상태를 가슴 졸이며 지난 후반기를 지나왔습니다. 그러자 2월 말경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체코 공화국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27만명이 일시에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우크라이나 접경 폴란드-슬로바키아-루마니아-몰도바 국경 20곳 이상에 난민 수용 스테이션에 도착하면, 몸만 빠져나온 난민들을 위해 그곳에서 필요한 물품들과 모바일폰과 유심칩 등을 제공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다른 유럽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차편 등을 시민단체와 정부기관이 총동원이 되어 도와줍니다. 긴급구호 유럽 시민단체들은 많은 난민 긴급구호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노하우와 상호협력 체계로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국경접경 스테이션이 구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이미 1992년 발칸전쟁때의 경험으로 전쟁으로 인한 유럽난민들의 비자 지위및 지원 조치를 협약한 상태여서 각나라들은 각 주요도시와 주단위로 헬프센터를 조직하고 국경 스테이션에서 분류되어 버스 또는 열차 등으로 난민들이 수송되면 즉시 원스톱으로 행정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신분확인, 난민지위 비자발급, 의료보험, 숙박시설 배치 등을 각 도시와 주 단위의 숙박시설을 총괄하는 정부기관이 실시간으로 숙박상황을 업데이트해 줍니다.
헬프센터에서 숙박시설로 난민들이 배치되면 그곳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시민단체들이 배치된 난민들의 생활을 지원합니다. 필요한 물품, 직업알선, 어린이 학생들 지속교육 등 실제적인 문제들을 지원합니다.
체코 정부는 30만명의 난민 수용이 가능하고 정책은 난민촌과 같이 그들을 대형시설에 집단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이 아니라 체코 시민들 사회속으로 난민들을 수용해서 그들을 게토화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난민이 30만명이 넘어서면 게토화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러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체코정부는 난민 1인당 하루 10불정도의 비용을 월단위로 지원을 하고, 난민들이 직업을 구하여 일을 하게 되면 그들의 수입만큼 지원금을 줄이거나 지원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민을 수용하는 가정이나 호텔 등은 난민 가정당 가족숫자당 지원금을 차별해서 지원을 해줍니다. 호텔은 정부와 1주일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난민의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숙박시설인 지역 교회들이 가능한 많은 난민들을 수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역하고 있는 체코형제복음교회의 경우는 전국 200개 지역교회들이 2천명의 난민들에게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그동안 재정문제로 방치해 두었던 시설들에 주방을 들이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수리하도록 총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완제품 또는 반제품의 음식으로 식탁을 장만하지 않고 식재료를 구입해서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드는 것 까지 일체의 식사를 반듯이 주방에서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주방시설 준비는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더 수용이 불가능한 지역의 경우 지역교회가 예배실을 유치원으로 개조를 해서 어린이 돌봄 종일반을 운영하여 그 어머니들이 체코어를 배우고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교회가 돕고있습니다.
난민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기초적인 생활도 하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과 식품들을 전국교회 단위로 수집을 해서 지역 난민들을 위한 푸드와 물품 뱅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일날 20명 남짓 모이는 작은 교회에서 난민을 두가정을 수용하여 온 교우들이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손톱미용 기술자이어서 교회가 그가 일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고 전교인이 돌아가면서 그에게 손톱미용을 받고 동네 사람들에게 광과를 해서 계속 일이 끊어지지 않도록 돕고있습니다.
주일날 자연스럽게 지역교회 시설 안에 있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은 예배에 참석을 하게되는데 대부분 정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래서 총회는 정교회 예배예전을 연구해서 에큐메니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체코어-우크라이나어 예배예식 안내서를 준비해서 지역교회들이 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성서공회는 우크라이나 신약성경을 난민들에게 배포해서 말씀의 위로를 받도록 돕고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국적으로 교세가 3천교회 3만명이지만 실제로 교회생활을 하는 숫자는 훨씬 적은 이런 작은 교회인 체코형제복음교회가 난민들 뿐 아니라 전시중인 우크라이나 지역 구호를 하고 있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디아코니아에 “긴급구호와 개발”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긴급구호 상황이 아닌 경우 해외선교의 차원으로 해외 여러나라에서 활동을 하는데 우크라이나에서 20년전부터 현재에도 우크라이나 기독교 시민단체 세 곳과 함께 키이우에 고아원 설립, 노숙자 쉼터, 그리고 슬로바키아 국경 근처 도시 우즈호르드에 로마니(집시) 공동체 설립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을 감지하고 전전날 각 기관에 작은교회의 재정으로는 큰 비용을 은행으로 송금해서 현지에서 대비하도록 하였고 150여명의 고아들 피난 준비를 하던 중 전쟁이 발발해서 미사일이 떨어지는 사이로 이 아이들을 독일로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키이우 시가지에서 노숙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지금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들 현지 시민단체들과의 네트워크로 물품을 트럭으로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사회에서 배척을 받던 로마니(집시) 공동체는 지금 밀려드는 난민을 수용하고 있어 이곳에도 물품을 지속적으로 트럭으로 실어 나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작은교회, 자신들만 모여 예배하던 폐쇄적인 교회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오자 교회들은 이들을 천사처럼 환영하고 섬기면서, 교회가 이전과 전혀 다른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코비드 19때에도 록다운으로 2년 가까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전국교회가 똘똘 뭉쳐 온라인으로 오히려 사회와의 접촉면을 더 넓혀가는 기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의 유투브 프로그램은 일반 언론에도 회자가 되고 방영이 되어 자연스럽게 교회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원 한 분이 여전도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금 5백만원을 보내주셨고, CTS 방송국에서 3천만원을 지원해 주셔서, 전쟁 발발 초기에 비해 모금과 지원열기가 식어 들었고, 난민 지원 상태가 초기단계를 벗어나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상황에서 이 지원금을 매우 긴요하게 이곳 총회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지난 4월초 한국교회봉사단체, CTS, 관계자와 저희 교단 신임 사무총장이 동역교단인 체코형제복음교회를 통해서 우크라이나 직접지원과 난민지원 상황에 대해 이곳 현장 실무자들로부터 자세히 브리핑을 듣고 돌아갔습니다.
체코형제복음교회 서체코노회와 함께하는 “실험실” 선교프로젝트와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의 모든 활동을 이곳 목회자들이 인계를 받고 회장으로 섬겼던 동역자 코르파 목사가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고 물리치료와 항암치료 중에 있어 교회 일을 비롯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모였던 모임도 당분간 재정비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서체코노회 선교프로젝트는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이니셔티브로 개척한 니르자니 교회와 기존의 프르제슈티체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니르자니 교회 목회자가 코르파 목사의 병가로 그를 파송한 플젠서부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프르제슈티체 교회는 교회에 대해 배타적인 지역사회 분위기를 바꾸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 선교프로그램을 통합해서 체코인들 특히 플젠인들이 좋아하는 코메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코메니우스 센터 – K-Center로 단체를 만들어 교회색을 지워 거부감없이 일반시민들이 접근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K-centrum (kcentrum.eu) 방문하시면 다양한 접근의 화보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과 극동아시아 대륙간의 크리스천의 길에 대한 대화” 프로젝트
프라하에서 2백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텔츠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교회와 함께 하는 작업입니다. 그동안 코비드 19 록다운 긴급조치로 지역과 지역의 이동이 금지되어 방문을 자제하였습니다. 이대 대면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교제와 상호 배움의 시간이 축적되는 만큼 결실들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책 출간계획
“모라비안 형제들의 선교”에 대해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우니타스 프라트룸 (형제단)”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교회에게 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형제단 편사”를 번역 출간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일차 번역을 마친 후 책을 어떤 방식으로 출판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재정자립형 선교플랫폼 노력
배달 전문으로 시작한 덕분에 작은 비스트로를 팬데믹 중에도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3년 넘게 아내가 혼자서 주방일을 하며 하루 15시간의 노동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작년 12월 초에 장소를 멀지 않은 곳에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전할 장소에서 이전부터 운영되었던 와인바를 인수해서 아들에게 맡겨 자신이 하던 일과 함께 이것을 현재 운영케 하고, 주방시설 수리가 끝나면 식당도 동시에 함께 운영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아내의 수고로 알려지고 신뢰를 얻은 메뉴가 체코인들과 지역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시켰습니다. 앞으로 운영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유럽대륙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전쟁이 강대국 패권으로 그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립적 위치를 지키며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던 나라들이 미묘하게 우크라이나 지원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자칫 이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유럽 시민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쟁의 불씨는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구소련연방 나라들 곳곳에 있습니다.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고, 발칸전쟁에서 당했던 굴욕을 벗어나 구소련영지 회복을 꿈꾸고 있는 상황이고, 이에 대해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결코 타협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우크라이나와 유럽대륙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