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드립니다.
사랑과 기도로 체코선교를 함께하시는 도림교회 성도님들께 보고를 드립니다.
첫째, 5월에 3주간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미 보고 드렸듯이 체코교회와 국가가 재정적으로 완전히 결별하는 2030년 이후 시대의 체코 선교를 위해 “자비량 선교 플랫폼” 준비를 위해, 최소한의 자본으로 포장 판매만 하는 작은 J’s Kitchen 식당이 코로나 시기에도 순탄하게 영업을 계속하다가, 작년에 예기치 않는 전문 수출입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어 서울에 사무실을 세우고 아들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 한국을 방문해서 아들 가족의 한국이주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8월 말로 아들 가족이 한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해외이주 1.5-2세이며, 손녀는 3세입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한주간 캄보디아를 방문했습니다. 향후 “자비량 선교 플랫폼”의 선교를 기획하는 관점에서 캄보디아 교회와 선교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2월 – 3월 한 선교단체의 요청으로 6주간 줌(Zoom)으로 체코종교개혁 역사에 대한 강의를 비롯해서, 한국에서는 호신대에서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한인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를 가졌고, 총회 선교사 훈련에서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에 대해 강의를 하였습니다.
둘째,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에 대한 총회 선교사 훈련 강의 노트입니다.
저의 체코선교 신학, 방향, 목표, 선교 방법론 등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 강의 노트를 끝까지 한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에큐메니칼 선교동역" - 체코형제복음교회와의 협력(동역)선교 사례연구
강사: 체코선교사 이 종 실 목사
저에게 주어진 강의 주제는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입니다. 이 주제의 개념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큐메니칼 선교"를 동역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역선교를 에큐메니칼적으로 하는 것인지 그 이해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칼 선교"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양극화된 신학적 개념에 따라 복음주의적 선교의 대립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로 JPIC 선교 과제를 세계 또는 지역 에큐메니칼 기관들이 함께 수행하는 활동을 "에큐메니칼 선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교동역"을 "에큐메니칼"로 하는 의미라면, 이때 에큐메니칼은 교회일치 운동 정신에 부합한 선교를 의미하며, "동역"은 선교사를 수용하는 선교지의 교회 또는 기관이 선교사의 선교활동에 있어서 주체적인 책임을 지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강의는 "선교사 파송 훈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개념과 "에큐메니칼" 개념도 사실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에큐메니칼 선교시대에 "선교사"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를 수용하는 교회와 단체와 협력 또는 동역하는 "선교 동역자" "선교일을 하는 사람" 또는 "코디네이터"라는 이름 등 용어들이 각 교회들 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체류자는 장기 거주를 위해 합법적으로 체류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법적으로 "선교사"라는 명목의 노동허가 카테고리가 있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체코의 경우는 "성직자 활동"입니다. 저는 "전체 교회를 위한 목사" (한국 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자면, '총회 목사'라고 할 수 있음)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노동허가 체류허가에 관한 법에 따라 천태만상입니다. 선교사의 체류를 위해서 교회법과 국가법의 충돌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나라나 이주자 체류법에 대해서 교회법은 국가법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 선교시대의 전통적 개념의 "선교사"는 오늘날에는 해외에서 선교관련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회법 또는 국가법에 따라 그 명칭은 달리 불려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총회가 현지교회, 교단 또는 기관들과 협력하여 활동하는 개념으로서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인 것으로 정의하여 현지교회(교단)과 협력선교를 하고 있는 저에게 이 강의를 요청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을 "교회간 협력선교"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보면, "에큐메니칼"이란 개념의 근원은 사실 해외선교와 관련있습니다. 로잔과 WCC의 에큐메니칼 기원을 교회사학자들은 친첸도르프의 교회론에서 발견합니다. 에큐메니칼의 근원은 교회일치 운동입니다. 친첸도르프는 교회의 일치의 관점에서 모라비안 선교의 사명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해외선교에서 에큐메니칼 선교를 이해한다면 이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교단(이하 PCK)은 세계교회들과 일치 가운데 선교를 선언하고 있지만("선교와 동반자적 선교", PCK 우리의 선교신학, 108회 총회), 실제 PCK의 해외선교현장은 교단의 선언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뚜렷한 구체적 정책도 없는 상황입니다. 독일 교회들은 노동허가와 연금과 보험과 생활비를 지원하며 에큐메니칼 기구들과의 선교협정에 따라 PCK의 선교사를 파송 받았습니다. 그런데 PCK가 독일교회와 협의없이 독자적으로 선교사를 독일에 파송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에큐메니칼 서클에서 유럽교회들의 항의가 계기가 되어 총회 세계선교부가 설립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해외교회들과의 관계업무는 총회 상임위원회였던 "세계교회 협력위원회(?)" 관할이었으며, 전도부의 "국제선교위원회"가 해외선교사 파송업무를 관장하였습니다. 같은 총회 안에서 이 두 위원회의 해외선교 정책 부조화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회는 이 두 위원회를 통합하여 세계선교부를 태동시켰습니다. 그러나 두 위원회의 업무는 세계선교부 발족 뒤에도 실질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채, 해외교회들과의 협력가운데 선교사를 파송하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정책과 행정도 분명하게 구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외선교 형태에 따라 "에큐메니칼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PCK 총회가 해외선교의 정책과 유형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선교" 개념은 지역의 개-교회들이 주체적으로 각자 추진하는 해외선교 경향과 상호 충돌되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저는 지난 30년간 체코형제복음교회와의 협력선교의 경험 속에서 "에큐메니칼 (해외)선교" 개념을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론의 부상과 함께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저의 선교 경험의 토대에서 PCK의 교회일치 정신에 부합하는 에큐메니칼 해외선교의 개념 정의와 구체적 실천방안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에큐메니칼" 개념을 PCK 해외선교 현장에서 실재하는 다양한 선교유형들을 판단하고 구별하는 기준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떤 양태의 선교를 하던지 함께 지향할 선교방향의 관점으로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장에서 PCK 해외선교 현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유형들을 정리하였고, 그 유형들을 세분하기 위해 조직의 관점에서 "교회"의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간 협력선교가 PCK만의 정책이 아니라 세계 교회의 흐름이된 이유를 정리하였고, 두번째 장에서 저의 실제 활동을 통해 제가 이해하고 노력한 "교회간 협력선교" 개념을 정의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들의 선교시대는 전세계에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이 토착화되고 자신학이 있는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교회들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들 교회들과의 협력선교를 위해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PCK 멤버이며 선교사인가?"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강의가 여러분들이 선교를 준비하는데 참고가 될 뿐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PCK의 에큐메니칼 해외선교의 신학과 정책을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왜냐하면 선교현장의 경험이 PCK 소속 지역 개-교회들의 선교의식을 발전시키고 총회 정책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우리 선교사의 책무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이 제도화될 수록 복음의 급진적 핵심을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문화를 신앙생활 방식에 맞게 바꾸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회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각자 독특한 신앙과 교회생활 문화가 형성된다. 이러한 차이를 비교교회론은 교회론적 패러다임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교회론적 패러다임은 2천년 교회사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면서 패러다임의 약점을 보완시키며 발전하였다. 교회간 다른 교회론과 신앙문화를 상호 접촉시켜서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것과 복음의 핵심을 구별하여 교회의 선교 확장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의 경험을 "선교자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경험의 토대가 되는 신학적인 쟁점과 갱신을 수반하지 않으면 교회의 선교적 활력과 선교사업(Mission Enterprise)은 제한적이 될 것이다.
선교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선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회심자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시차적으로 다를 수 있고, 한번 회심으로 인간의 죄의 깊이를 완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 없고, 평생동안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선교사는 잊어서 안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산파의 역할로서, 삶과 말로 복음을 일관되게 증언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 자신의 양들의 마음을 직접 열어 주셔서 그들이 자신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게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헌신하도록 인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교회간 경험 교류를 통해 영적각성과 교회의 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개인 복음전도와 영적쇄신 그리고 제도교회 구조는 상호 강화시키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 (개-교회가 선교적 동력을 얻는 것은 1.탈문화화로 방어 매커니즘을 꿰뚫는 예민함, 2. 감추어진 죄를 드러냄, 3. 사람들-교인 비교인 모두를 회개에 이르게함…교회 부흥을 가져오는 선교적 동력은 선교사의 예언자적 통찰력과 교인 또는 목회자들과의 상담-그러나 이것이 어떤 정기적인 교육 상담 예배 등 제도적틀을 갖기보다 규율에서 벗어난 십자가의 사역에 의한 해방 등이어야 - 그래서 현지교회와의 선교사의 신뢰와 친밀함이 중요) 이를 위해 선교사는 동역하는 선교지 현지교회의 칭의의 역동성, 죄에 대한 이해 등등 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목회현장의 실제를 탐구해야 하고, 아울러 교회 사명에 대한 참여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내적 삶의 복종에 저항하는 바리새적 신앙태도 등에 대해 관찰을 하며, 끊임없이 현지교회의 신학자와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교제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론적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지향하는 선교적 노력이다. 그러므로 교회론적 선교란 단순히 missions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셋째, 서체코 선교 실험실 프로젝트 – 2030년 이후 교회의 선교준비
지난 30여년간의 체코교회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2030년 이후 교회가 재정자립을 하는 시기부터 체코교회 선교를 위한 선교신학, 선교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체코 목회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2030이후 교회의 복음증언을 위한 선교신학을 다듬고 있습니다. 이 선교신학과 방법론이 서체코 노회의 동의를 얻게 되면, 플랫폼을 조직하는 것을 저의 마지막 체코선교 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넷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첫째, 아들 가족의 한국이주가 잘 정착되도록
둘째, 2030년 이후 서체코 선교를 위한 플랫폼 구축계획을 위하여
셋째, 2026년 맞이할 은퇴를 잘 준비하여, 은퇴 이후에도 남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2024년 7월 31일 프라하에서
이 종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