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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M CHURCH

해외선교

체코 선교보고 81신(2011.4.24 ~ 7.23)
2011-08-10
[보고기간 2011. 4. 24 - 2011. 7. 23]

이제는 날씨도 때를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자주 내리는 비와 낮은 기온으로 이곳 체코의 여름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유난히도 장마가 길었고 장마후에 백년만의 폭우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희생들이 무엇보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소말리아 케냐 나이지리라 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뭄으로 엄청난 난민과 기아가 발생하여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체코형제개혁교단과의 협력선교

1.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10년간의 사역의 흐름을 지난번 보고로 드렸습니다. 오늘은 국제침례신학부에서 선교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며 함께 동역하는 류광현 전도사가 꼬빌리시 교회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류광현 전도사는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바로 프라하로 와서 국제침례신학부에서 선교학 코스워크 과정 5개의 연구 페이퍼(A4 10-15쪽)를 앞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사역들을 주제로 정하였습니다. 그 중에 2개가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사역입니다. 하나는 <다민족 꼬빌리시 교회의 Inter-Cultural Common Worship> 다른 하나는 <프라하의 두개의 한인 이민교회 교회개척 이니셔티브 비교>입니다. 그리고 이 두 연구 페이퍼를 하나로 묶어서 지난 6월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열린 유로비전포럼에서 유럽의 다른 한인교회 목회자들과 선교사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옮겨놓습니다.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의 Inter-Cultural Common Worship과 Church Planting Initiative에 대한 신학적 성찰


꼬빌리시 교회 류광현 전도사


1. 꼬빌리시 Inter-Cultural Common Worship

1.1 Inter-Cultural Common Worship에 대한 간략한 묘사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는 네 개의 다른 민족, 즉 체코, 한국, 일본, 몽골 공동체가 한 건물 안에 공존하는 교회입니다. 한 달에 세 번은 각 공동체의 전통과 스타일을 따라 독립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매월 첫 주에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사전에 합의된 공동의 예배 형식을 따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이 연합 예배의 인도자는 꼬빌리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체코 목사입니다. 그가 체코어로 말하면 바로 한국어 통역이 이어집니다. 이후 그 한국어 통역은 예배당 뒤쪽에 모여 앉아 있는 일본 교우들에게 통역됩니다. 이 다민족 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몽골 공동체의 경우, 사전에 제공된 설교의 번역본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설교는 체코, 한국, 일본 목사가 돌아가면서 담당합니다. 한국 목사가 말씀을 전할 경우, 체코 목사는 사전에 준비된 한국어-체코어 번역본을 가지고 설교를 통역합니다. 설교의 통역은 단락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통역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모국어로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그 앞에 들은 내용을 묵상합니다.
성만찬은 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체코 목사와 한국 목사가 함께 집례합니다. 보여지는 언어가 말해지는 언어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 시간에 의사소통의 한계는 최소화됩니다. 다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공동의 고백 가운데 아무 구별 없이 주의 식탁에 둘러서서 빵과 포도주를 나눕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받기 직전, 회중은 각자 모국어로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함께 드립니다. 그리고 체코 말 “Pokoj tobe! (Peace to you!)”로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성만찬이 끝나고 중보기도 시간이 이어집니다. 예배 인도자가 한 가지 제목으로 기도를 마칠 때마다 회중은 한국 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로 응답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배는 축도로 마쳐집니다. 체코 목사와 한국 목사는 손을 잡고 민수기 6장 24-26절의 말씀을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암송하며 함께 축도합니다.  
이런 종류의 예배는 “Inter-Cultural Common Worship”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Multi-Cultural Worship”을 넘어 “Inter-Cultural worship”입니다. ‘Multi-Cultural’이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실재 혹은 현상을 묘사하는 수식어라면, ‘Inter-Cultural’은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들과의 만남 속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방식과 비전을 함축합니다. 또한 이 예배는 ‘Shared worship’이 아니라 ‘Common worship’입니다. 각 공동체만의 특성을 반영한 예배를 돌아가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각 공동체 대표자들에 의해 사전에 합의된 공동의 예배 형식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1.2 꼬빌리시 Inter-Cultural Common Worship에 대한 신학적 성찰

A. 하나님 중심 예배의 회복 사역으로서의 Inter-Cultural Worship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은 물론이고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만약 교회의 선교가 온 세계를 향해 이 궁극적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심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 하나님의 백성이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에 대한 가르침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이 그 예배에 실패했던 역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2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 예배입니까? 그것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께만 향해진 예배입니다. 바른 예배는 유한한 것들이 아닌 무한한 존재에게 정향된 예배, 즉 하나님 중심적 예배입니다. 예배의 진리성은 얼마나 쉽게 우리가 우리의 지혜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느냐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에 의해 얼마나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와 관련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는 우리 자신을 그분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롬 12:1). 말하자면, 예배는 드리는 것이며, 바른 드림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죽음 (자기 부인)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 삶의 상황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관계, 우리가 지나온 삶의 이야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 등에 의해 영향 받습니다. 우리는 부와 성공과 안락과 안전과 건강과 오락을 향해 정향된 공동체 안에서 바르지 못한 예배 혹은 우상숭배적 예배를 인간 조건의 평범한 한 부분으로서 배웁니다. 그 결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소비자 혹은 관객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소비적 예배 속에서, 받는 것은 드리는 것을 압도합니다.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됩니다. 이런 종류의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로만 정향되어 있지 않은 예배, 즉 인간 중심적 예배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바른 예배와는 거리가 멉니다.
한편, 바른 예배는 이 세상의 패턴에 대항한 마음의 혁신과 삶의 변혁을 수반합니다. 바르지 못한 예배가 우리의 익숙한 공동체 안에서 습득되듯, 바른 예배 역시 공동체 안에서, 즉 우상숭배적 공동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변혁적 공동체 안에서 습득되어야 합니다. 바른 예배 공동체 안에서만이, 우리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예배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우리의 마음과 삶의 변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게 드려지는 하나님 중심적 예배는 ‘의도적’이며, ‘성찰적’이고, ‘예언자적’이며 ‘회복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은 예배자들이 속한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바른 예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 상호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욕망을 손쉽게 만족시킬 수 있는 자연스런 환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선호하는 것에 맞서서 불편한 상황 속에 우리 자신을 의식적으로 위치시키고자 하는 도전적인 시도입니다. 이 상호 문화적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낯선 문화는 우리의 익숙한 문화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이 낯선 것의 침입과 함께 우리는 우리의 익숙한 문화가 낳은 신학적 틀 안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상황을 심각한 신앙의 위기로 느낄 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화적-신학적 틀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러한 판단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온전히 소유된 진리의 오직 일부분만을 이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확신들을 존중하고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이 드려지는 동안, 낯선 문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를 보다 객관적이고 예언자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예배 안에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문화들 사이의 역설적인 긴장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이 긴장은 우리를 보다 성숙하고 온전한 세계관의 재형성으로 이끕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변혁을 ‘문화적 회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Inter-cultural worship은 바른 예배와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지속적인 회심의 기회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의 성공은 곧 ‘은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Inter-cultural worship은 어쩌면 은혜스럽지 않고, 따라서 바르지 못한 예배로 인식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배 중에 하나님을 보다 가깝게 만나려는 열망 그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는 본질적으로 드리는 것이 받는 것을 선행해야 합니다. 예배의 성공은 그러므로, 받는 것보다는 드리는 것과 관련됩니다. 예배에서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참된 받음은 오직 참된 드림을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먼저 바른 예배자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에 바른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꼬빌리시 교회 한인 공동체 안에는 Inter-cultural worship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며 나아가야 할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Inter-cultural worship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 태도는 예배에 관한 그들의 신학적 미성숙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 경쟁적 환경과 그 안에 있는 한국교회의 Marketing Evangelism의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그들이 문화적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예배 소비자들에게 Inter-cultural worship은 적어도 한 두 번은 경험해 볼 만한 흥미로운 쇼가 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배에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그 불편한 예배는 결코 소비하기에 용이한 예배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예배 소비자에서 바른 예배자로의 급진적인 회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들을 위한’ 예배를 찾기 위해 다른 교회들 주변을 계속해서 배회해야 할 지 모릅니다.  
이처럼, Inter-cultural worship은 영적 전투의 현장입니다. 그 예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는 대신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돌아설 때입니다. 존 하워드 요더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순종과 하나님의 대의의 승리 사이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꼬빌리시 Inter-cultural worship은 예배자들을 십자가의 역설적 승리와 부활의 새 생명에로 정향시키는 하나님 중심의 바른 예배의 회복 사역입니다.

  
  B.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의 체현으로서의 Inter-cultural worship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을 경험하고 그분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는 의식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후 5:17-18).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화해의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화해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화해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한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하나의 새로운 화해의 공동체를 발생시켰습니다. 그 공동체는 어떠한 차별도 없는 호의적인 수용과 포용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리스도는 배타적 율법을 자신의 육체 안에서 폐기하심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 즉 적대감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2:14-15).
이와 같이, 민족들 상호간의 화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창조하신 ‘한 새 사람’은 모든 민족적, 인종적, 성적, 언어적, 그리고 문화적 경계들을 초월하는 우주적 교회뿐만 아니라, 적대감을 환대로, 분리를 통합으로 변화시켜 가는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그 새 정체성은 모든 이전의 사회적 차이들 혹은 다른 정체성들이 가진 차별적인 영향력들을 거절함으로써 그것들을 (부인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화시킵니다. 또한 그것은 미래의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동일화 혹은 균질화의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화해와 환대의 인격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 안에 통합시킵니다.
   하나님의 가족에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세례는 그 새로운 화해의 정체성과 이를 위한 상호 책임성을 향한 공동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새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혹은 그들에 맞서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새 정체성 안에서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을 향해 열려지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만찬은 그 새로운 정체성을 지탱하고 그것에 합당한 삶을 위한 능력을 부여하는 교회적 실천입니다. 이처럼, 세례를 통해 수립된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은 예배나 선교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들 속에서 반복해서 확인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은 예배자들이 속한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체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입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은 다양한 문화들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 속으로 동질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상호 적응의 과정을 통해 그 다양한 문화들을 하나의 새로운 ‘Catholicity’ 속으로 통합시키고자 합니다. 도날드 맥가브란의 주장처럼, 문화적으로 동질화된 예배 혹은 공동체는 어떤 가시적인 목적을 성취하는데 효과적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나 다른 문화들을 향해서나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인종, 민족, 경제적 지위 혹은 문화와만 긴밀히 연결된 예배는 바르지 못하고 비도덕적인 예배를 향한 잘못된 한 걸음을 옮겨놓는 것입니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개인주의, 전체주의, 혹은 획일주의와 얽혀진 나쁜 예배는 화해의 복음을 오염시키고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을 위태롭게 합니다.  
한편, 예배의 ‘Catholicity’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향한 모든 문화의 개방성을 증거합니다. 그러한 보편적인 예배 안에서 복음의 구속적이고 화해적인 능력은 활력 있게 작동합니다. 꼬빌리시 교회의 Inter-cultural worship은 그 새로운 Catholicity를 지향합니다. 이 예배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영어나 체코어와 같은 어떤 지배적인 공용어를 취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이 보여주듯, 지역교회 수준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들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꼬빌리시 Inter-cultural worship은 하나의 문화 혹은 전통에만 기반한 예배 형식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들의 상호 합의를 통해 하나의 새로운 예배 형식을 만들어 시행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갑니다.  
예배 중에 한국인들이 체코인들에게 “Pokoj tobe!”라고 인사할 때, 체코인들은 이 한인 이주자들을 자신들의 가족으로 느낍니다. 체코인들이 한국의 전통적 리듬의 찬양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체코 사회에 의해 용납되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어와 체코어의 다성악으로 들려지는 축도를 들으며 모든 예배자들은 그들 모두가 복 주시는 한 분 하나님 께 함께 속해 있다는 의식 속에서,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화해적 정체성을 재확인합니다.
성만찬은 체코 개신교인들의 예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들은 이를 위해 피를 흘렸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인 후쓰파의 전통 속에서, 성찬은 진리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 사이의 피의 결속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전통적인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 체코 개신교도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하나님과의 연합뿐만 아니라, 함께 둘러 선 형제 자매들과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생각합니다.  
체코인들의 이 문화적-전통적 특수성은 다른 민족 공동체들, 특별히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체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참여하는 성만찬은 다른 이주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는 특권과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 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생명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역으로, 그리스도의 식탁에 둘러선 다른 이주민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는 체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체코 개신교도들은 계속되는 박해와 억압 속에서 그들의 신앙과 양심을 지켜온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은 교회 구성원들간의 끈끈한 연합을 가능하게 했지만, 또한 동시에 그 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향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합니다.        
    다른 이주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참여하는 성만찬은 체코 그리스도인들이 소중히 생각하는 피의 결속의 영역을 단지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만 한정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이 상호 문화적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보편적인 화해적 정체성을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민족 교회와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그 화해와 환대의 삶의 방식을 실천하도록 도전 받습니다. 하나님의 가족들인 다른 이주민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가운데 체코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사역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그들의 선교적 정체성을 점점 더 깊이 체현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C.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증거로서의 Inter-Cultural Worship

예수의 선포가 그의 사역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줄곧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처럼 (마 4:17; 행 1:3), 그리스도인의 중언의 궁극적 초점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전도는 교회로의 ? 린?아니라 하나님 나라로의 ? 마遮?맥락에서 정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교회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와 관련한 교회의 독특한 소명을 명료하게 드러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나라의 가시적 증거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는 결코 숨겨질 수 없는 언덕 위의 동네입니다 (마 5:14) 교회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세상 앞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 린?갖는 의미를,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보여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회의 미리 맛봄은 교회의 가시성과 모순되기는커녕, 오리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함축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들은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계시되어야 합니다 (롬 14:17). 복음은 단순히 ‘독특한 메시지’이기만 한 것이 압니다. 그것은 온전한 예배와 순종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메시지, 즉 ‘살아 있는 편지’가 되는 ‘한 무리의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메시지와 메신저 사이의 불일치는 복음 전파에 누를 끼치는 하나의 스캔들이라는 점에서, 또한 손상된 인간성의 온전한 회복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는 단순히 복음의 도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의 일부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존 하워드 요더의 말처럼, 교회는 “지배와 배제와 민족적 우상숭배와 개인적 권리들”에로 정향된 세상의 정치학에 대한 ‘반-정치학 (Counter-Politics)’이 됨으로써, 또한 “결핍과 소비와 탐욕과 효용과 경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세상의 경제학에 대한 ‘반-경제학 (Counter-Economics)’이 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참된 증인이 됩니다. 물론, 이처럼 독특하고 전복적인 삶의 방식을 통한 증거는 고난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십자가를 짐으로써 창조해내는 세상과의 차이는 교회의 참된 증언을 위한 본질적인 조건입니다. 즉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공동체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우리는 누구이며, 다른 피조물들과 우리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예배는 ‘바른’ 예배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적 차이를 포괄하고 있는 복음적인 바른 예배는 복음을 보다 매력적이고 믿기 쉽게 설득하고자 의도된 예배라기보다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께로만 정향된 예배입니다. 교회는 가장 (Pretending)이 아닌 실천 (Practicing)을 통해 복음을 증거합니다.  
복음적인 예배는 아름다운 예배와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복음적인 아름다운 예배는 하나의 피부색, 하나의 문화, 하나의 계층의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어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탁월함 속에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화해적 정체성과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일들 - 모든 족속과 방언과 민족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구원의 감격 속에 함께 어린양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비전 (계 5:9-10) - 을 체현하는 예배입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은 예배자들이 속한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증거하려는 하나의 시도입니다. Inter-cultural worship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그 오고 있는 나라를 증거합니다. 이 예배는 그것이 환대와 포용의 정치학에 의해 지배되고, 감사와 풍요의 경제학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그 나라를 증거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신앙과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처럼 ‘불편하고’, 일견 ‘낭비적인’ 접근은 결코 시도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Inter-cultural worship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표현합니다. 꼬빌리시 예배 공동체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결코 아니며, 다만 그 나라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이 예배 속에서 각 예배자들은 오히려 그 나라의 가치들을 체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인간적 연약함을 더 뼈져지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 막연히 의식하고 있었던 문화와 언어와 전통의 장벽들을 더 철저히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상호 문화적 충격은 진정한 예배자들을 새로운 ‘진리의 순간’, 즉 세상을 그들의 제한되고 부분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오고 있는 왕국의 관점에서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이끌어 갑니다. 더 나아가, 그 상호 문화적 충격은 진정한 예배자들을 소망 중의 행동들로, 즉 오고 있는 그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교회와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혁시키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갑니다.  
이런 맥락에서, 꼬빌리시 inter-cultural worship은 체코 상황에 적절한 선교적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2008년 European Values Study 통계조사에 따르면, 체코 공화국은 유럽에서 세속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로 평가됩니다. 교회들 상호간의 싸움과 박해, 정치권과 결탁된 교회의 타락과 무능력은 체코 세속화의 중요한 역사적 원인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공산정권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그들의 반-기독교 선전을 위해 효과적으로 이용했고, 그것은 또다시 이 나라의 세속화를 가속화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체코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회와 복음에 대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잃어버린 위세에 대한 가련한 한탄처럼 보여질 지 모릅니다. 오히려 지금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참되게 보여주는 것, 즉 교회를 통한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더 시급하고 적절한 전도의 방법일 것입니다. 예배는 복음이 내포하고 있는 주장에 구체적인 실체를 부여할 수 있는 선교의 핵심 사역 중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코 지역 교회의 예배 안에서의 가시적인 하나됨은 그 자체로 체코 사회를 향한 복음적인 초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배 형식 속에서 가시적인 하나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화해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교회는 그 화해의 복음을 체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그 전복적인 왕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자신이 몸소 복음에 의해 계속해서 변혁되는 과정 속에서 그 복음을 참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꼬빌리시 교회의 Inter-cultural worship은 그 다민족 교회 안의 각 공동체들이 복음 안에서 서로 도전을 주고받으면서 질적인 자기 변혁을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바르고 아름답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꼬빌리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눅 9:23).
이것은 분명히 죽음의 경험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이루어지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예배 안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변혁의 훈련을 감내한 후에, 비로소 예배자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활의 새 생명 안에서 그들의 삶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꼬빌리시 Inter-cultural worship은 진정한 제자도를 위한 하나의 훈련 학교이자, 그만의 독특한 십자가적 차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시적으로 증거하려는 하나의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Church Planting Initiative

2.1 크리스찬 이주민들과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

이주민들은 변두리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표합니다. 많은 이주민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 불편함, 고립, 주변화, 차별 등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섬기도록 위임 받았습니다. 특별히 신앙을 위해 고난을 겪고 있는 크리스찬 이주민들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 계속해서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보여줍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주민들 속에서 감당해야 할 교회의 선교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찬 이주민들은 선교의 대상들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선교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반영합니다. 유럽의 크리스찬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온 크리스찬들을 신학 교육과 diakonia의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찬 이주민들을 단지 선교의 대상들로만 바라보는 것은 선교학적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그들은 현지인 크리스찬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요원이자 파트너로 부름 받았습니다. 스티븐 베반스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이주의 상황 속에 있는 기독교 선교는 ‘이주민들 속에서의 선교 (mission among migrants)’일 뿐 아니라, ‘이주민들의 선교 (mission of migrants)’입니다. 크리스찬 이주민들은 현지 교회들이 교회의 그 온전한 보편적 (catholic) 실재를 체현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들 자신의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주민적 사역을 이어간다는 맥락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독특하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계 지점 (in-between)에 서 있는 크리스찬 이주민들은 나그네들의 필요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떤 신분이나 자원이나 공동체와의 인간적인 결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교의 대상으로서의 크리스찬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디아스포라 교회는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independent)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교회는 현지 교회들보다 고국의 교회들과 더 긴밀한 연결성을 갖기 쉽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Church Planting Initiative는 ‘회당 모델 (Synagogue model)’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의 내용에 관한 한 이 둘은 다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단일 민족 교회 모델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기 전 안디옥에 잠시 존재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독립적인 디아스포라 교회는 그것의 Church Planting이 ‘민족성 (ethnicity)’과 ‘동질성 (homogeneity)’의 기초 위에서 개시된다는 점에서, 유대인 회당 모델과 유사성을 갖습니다.    
한편, 선교의 요원과 파트너로서의 크리스찬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디아스포라 교회는 상호의존적인 (interdependent) 다민족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교회는 현지 교회와의 긴밀한 연결성 속에서 협력해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Church Planting Initiative는 ‘안디옥 교회 모델’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다민족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도약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안에 계속해서 세워져 간 다른 많은 교회들을 위한 모델이었습니다. 상호의존적인 디아스포라 교회는 그것의 Church Planting이 ‘보편성 (catholicity)’과 ‘이질성 (heterogeneity)’의 기초 위에서 실행된다는 점에서 안디옥 교회와 유사성을 갖습니다.        

2.2 꼬빌리시 한인교회 Church Planting 모델: 상호의존적 다민족 교회

A.꼬빌리시 교회의 자기 정체성과 선교적 비전

   꼬빌리시 교회는 폐쇄적인 체코 교회가 스스로를 선교적 교회로 변화시켜 가도록 도우려는 선교적 동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꼬빌리시 교회의 존재 방식은 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하나님의 선교에의 동등한 참여자들이라는 확신에 기초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꼬빌리시 교회는 상호의존적 Church Planting Initiative를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의 연장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교회들 및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이 복음에 대한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하나됨 속에서의 선교 (mission in unity)’를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도전적인 시도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꼬빌리시 교회는 체코 교회와 함께 호흡하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지향합니다. 이 상호 문화적 교회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민족주의를 넘어 새롭게 형성되어 갑니다. 여기서 한인 크리스찬 이주민들은 Church Planting의 시초부터 선교의 대상으로보다는 선교의 능동적인 요원이자 파트너로서 인식됩니다.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그네들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cross-cultural하면서도 counter-cultural한 실존을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떠나온 사회 둘 다를 향해 독특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접근 속에서, 디아스포라 교회는 늘 움직이고 있는 교회로 묘사됩니다. 그것은 피난처나 쉼터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가는 망명자들을 위한 희망의 출장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경계 지점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교회는 그것의 이질성 (heterogeneity)과 보편성 (catholicity)로 특징지어 집니다. 여기서 선교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공동의 증언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 확장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로의 ? 만?지향합니다.    
  

B. 꼬빌리시 교회 Church Planting의 원리와 방법

   꼬빌리시 교회의 Church Planting은 ‘통합 (integration)’의 원리와 ‘하나됨 속에서의 선교 (mission in unity)’라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통합은 “이주민과 현지인 모두를 향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적응을 요구하고, 그들이 긍정적이며 평화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기적이고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통합은 미리 가정된 하나됨의 재건을 향해 나아간다기보다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이방적 성격 (strangeness)을 가지고 기여할 수 있는 에큐메니칼한 사회적 질서의 재구성을 지향합니다.
    ‘하나됨 속에서의 선교’는 교회들 사이의 그 진정한 통합을 통해 화해의 복음을 공동으로 증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을 분리하는 장벽들을 허무는 것은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교회는 문화적 장벽들을 넘어가며 성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역 초기부터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함께 예배 드리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그들의 다른 배경들로부터 기인하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는 가운데 함께 성장해가는 교회들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ecumenism은 충돌을 배제하는 교제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됨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선교 안에서의 나눔 (sharing in mission)’은 꼬빌리시 교회의 이 통합적이고 에큐메니칼한 선교적 접근의 중요한 한 측면입니다. 꼬빌리시 교회의 상호 문화적 교제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오랜 박해의 역사와 계속되는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세상을 향해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교회로 남아버린 체코 교회와, 넘치는 선교적 열정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의 전통에 있어 뿌리가 약한 한국 교회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면서 서로 배우고 영적 물적 자원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최초의 공동의 비전 아래서, 두 교회는 상호 적응과 나눔을 통해 지난 10여 년간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체코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한인들의 필요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한편 한인 그리스도인들은 체코 교회의 자기 변혁을 위한 영적 자극과 선교적 촉매의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그 결과 폐쇄적이었고 배타적이었던 그 체코의 지역 교회는 한인 공동체의 세 대표집사들을 그들의 당회에 언권회원으로 참여시킬 만큼, 이전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의 꼬빌리시 교회는 일본과 몽골로부터 온 또 다른 이주민 크리스찬들을 그 안에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다민족 교회가 되었습니다.  
    

C. 상호의존적 다민족 교회 모델의 장점과 단점

   상호의존적 다민족 교회로서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선교 활동이 보다 초점을 맞추는 컨텍스트는 체코 내 한인사회라기보다는 체코 사회입니다. 체코 선교를 주도적으로 감당해야 할 교회는 결국 체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체코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일을 한국의 이주민 교회가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존재 방식은 무엇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꼬빌리시 교회의 상호의존적 Church Planting 모델은 체코의 현지 교회가 이주민들 속에서의 선교 (mission among migrants)에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한편,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그 독특한 실존을 통해 복음을 참되게 증거하도록 도울 수 있는 하나의 도전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호의존적 모델의 장점 중 하나는 그것이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상호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존재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현지의 체코 교회는 한인 이주민 크리스찬들을 향해 환대를 실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세상을 섬기는 선교적 교회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때 한인 크리스찬들은 단순히 수동적인 수혜자들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상호 문화적 교제 속에서, 그들은 현지의 체코 교회를 교회의 온전한 보편성 (catholicity)의 실재를 향해, 그리고 위험하고 상처받기 쉬운 장소로 이동하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복음의 깊은 진리을 향해 이끌어 갑니다.  
    상호의존적 모델의 또 다른 장점은 그것이 교회의 선교적 본질과 크리스찬의 이주민적 혹은 순례자적 성격을 체현하는 교회의 존재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교회의 선교가 경계를 넘어가는 것과 관련된다면, 이 상호의존적 모델은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내포하는 그 교회의 실존 자체를 통해 ‘경계를 넘는 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현존의 분명한 표지”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선교는 교회 밖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호의존적 환경은 각각의 교회를 이기주의와 자기만족으로부터 해방하고, 이를 통해 각 교회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자기 변혁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익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호의존적 교회는 상호 변혁적 사역에의 동참을 위해 그들 자신의 경계를 넘어가도록 지속적으로 도전 받는 순례자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그 교회는 늘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여기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온 교회의 협력적 참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가 참여하는 여러 사역 중의 하나도, 교회 부흥의 다음 단계도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바로 그 존재 목적이며, 교회 부흥의 핵심적 표지입니다.  
    상호의존적 교회 모델의 또 다른 강점은 그것의 존재 방식 자체가 복음의 가시적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됨을 위해 투쟁하는 교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세상을 거룩하게 하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참되게 증언하는 ‘십자가의 선교’의 한 실천입니다. (이 부분은 앞의 Inter-cultural common worship 파트에서 충분히 다루었기에 이 정도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상호의존적 모델은 몇 가지 약점을 지닙니다. 첫째는 그러한 상호 문화적 교제를 개시하고 발전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예배당이 텅텅 비어감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유럽의 많은 교회들은 해외에서 온 크리스찬들을 그들의 가족으로 환영하고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를 꺼립니다. 그들의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신학적 우월의식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많은 이주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들 자신만의 교회를 세우고 그들의 종교적 전통을 재생산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들은 다민족 환경 속에서 그들 소수자들의 문화와 전통이 다수에 의해 소외되거나 무시될 것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상호 문화적 교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그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이고 상호적인 자기 부인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접근은 너무나 불편하고, 지나치게 지성적이고, 심지어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호의존적 모델의 또 다른 약점은 목회적 측면과 관련됩니다. 현지의 컨텍스트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접근은 교회 구성원들의 필요에 민감히 반응하는데 자연히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상호 문화적 교제는 유익할 수 있지만 불편한 환경입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목회적 구조입니다. 따라서 상호의존적 교회 모델은 교회 구성원들이 그들 목회자의 선교적 마인드와 열정을 따라잡지 못하고 실족하게 되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에 있어서의 이 한계와 실패는 교회의 선교적 실천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호의존적 모델이 그 지향하는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이 그들에 대한 선교적 도전과 효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적절한 선교적 목회 구조의 확립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할 수 있습니다.    


해외 한인 이민자 또는 일시체류자 크리스천들의 한인교회들이 신학적 교회론적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어떤 존재로 세워져야 하는가? 어떻게 세워지는 한인교회를 하나님이 원하실까? 특별히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에 익숙한 한국 크리스천들이 교회의 일치와 선교를 모토로 삼는 유럽교회들을 어떻게 존중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까? 이러한 고민을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안에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막상 시도를 해보니 저의 말할 수 없는 한계와 준비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좋은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이 사역을 공감하고 같은 비전을 품게하고 더 나아가 저의 부족한 모습을 채워가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류광현 전도사는 금년 말 총회의 선교사 파송절차를 밟아 금년 말 또는 내년 초에 정식 선교사로 파송 받을 예정입니다. 류광현 전도사의 부인은 초등학교 특수교사이면서 미디어 교육에 탁월한 전문성과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하에 4살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류광현 전도사는 이미 꼬빌리시 교회 사역과 중앙유럽선교연구소 연구활동을 병행하면서 체코 슬로바키아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할 계획입니다. 후원교회를 위해 기도중에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체코형제개혁교단 협력 – 선교와 전도 전문위원회, 에큐메니칼 전문위원회

향후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우 역사적이고 중요한 기념행사들이 있습니다.

2013년 – 시릴과 메토데이 복음전도 1150주년, 체코어 성경번역 400주년, 로이엔베르그 협의회 (유럽 전체 개신교회 협의회) 40주년

2014년 – 이종성찬개혁 600주년,

2015년 – 얀 후스 체코 종교개혁자 화형 600주년

2016년 – 야로미르 브라뜨르스끼 종교개혁자 600주년

2017년 – 루터 500주년

2018년 – 체코형제개혁교단 설립 100주년

그래서 체코형제개혁교회 총회와 2015년 얀 후스 600주년을 기해서 양 교단간의 협력이 좀 더 가시화되고 동시에 양 교단 교회들의 선교적 교회로의 갱신을 유도할 수 있는 기념대회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이 계획 속에 있지 않았지만 아내가 체코형제개혁교단 소속 목회자가 쓰고 총회가 발간한 프라하 종교개혁 유적지 소개 책을 번역하였습니다.
우리교단 총회 교육부가 출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라하 찰스대학 개혁신학부 교회사 교수 마르띤 베르니쉬가 쓴 <후스 종교개혁 – Husitstvi >와 후스가 쓴 <설교집>을 제가 한국어로 빠른시일내에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후스 종교개혁을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영어나 독일어 및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어있지않은 두권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한뒤 신학자들의 연구교류 및 다양한 교류를 차차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사역

1.선교신학 교육, 선교적 교회를 위한 목회자 교육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는 신학교육은 물론 교회 목회자들의 목회활동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많은 인내와 노력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데이빗 보쉬의 번역한 책과 최근 발간한 연구 프로젝트 책을 중심으로 목회자와 평신도 교육을 계속 모색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바르가르는 금년 9월 새학기 부터 프라하 개혁신학부에서 데이빗 보쉬의 선교신학을 강의할 예정입니다.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가 대학에 정식 외부강사 강의를 요청하여 학점이수 과목으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2.체코 슬로바키아 교회들의 1989년 이후 교회논의 이슈들 자료정리

그리고 연구원들이 1989년 이후 체코 교회들의 복음전도 이슈와 실천을 각 교단과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여 백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수집된 자료를 각 교단 담당자들에게 보내어 수집된 자료의 출처확인을 받고있습니다. 틀림없는 자료로 모두 확인이되면 바로 홈페이지에 게제하여 앞으로 활동을 계획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삼게될 것입니다.

3.선교 윤리 연구

체코교회들은 여전히 선교개념을 지리적 개념으로 해외복음전도를 선교, 국내복음전도를 전도로 구분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체코 슬로바키아 복음전도를 위해 가장 우선되는 과제가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코교회들의 올바른 선교개념 이해는 체코교회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사명과 과제를 깨닫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현제 체코교회들의 선교 현주소, WCC WARC 노이에른베르그 협의회 유럽교회협의회들의 선교개념을 정리한 문서들 분석, 성서에 나타난 선교와 윤리의 관계문제, 기독교 윤리와 신학의 관점에서 본 복음전도와 디아코니아, 이웃과의 일치와 신뢰에 대한 철학적 관점, 증언과 타종교 대화의 관계 문제, 개종과 교회일치 선교 등 이상의 주제들을 연구원들이 다루고 있습니다.

3.체코종교개혁을 선교신학적 평가 연구

2013년 복음전파 1150주년 기념행사와 2014년 이종성찬개혁 600주년 그리고 2015년 얀 후스 600주년 행사를 기해 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가 1150주년을 맞이하는 시릴과 메토데이 복음전도와 600주년 이종성찬개혁 그리고 600주년 얀 후스 체코종교개혁에 대해 선교신학적인 평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행사들이 행사로 마쳐지지않고 교회들이 선교적인 교회로 개혁하는데 나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4.중앙유럽선교연구센터 업무 조정

류광현 전도사는 연구원 주잔나 유레호바 박사와 빠볼 바르가르 박사들과 함께 연구협의를 하고
저는 회장 꼬르빠 목사와 유레흐 목사와 함께 연구원들의 연구를 개교회들의 관심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 모색과 필요한 연구테마들 그리고 행정적인 결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제가 영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요.
동역자 류광현 전도사의 선교사 파송과 후원교회 결정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요.